모든 게 쉽다

모든 게 쉽다

최근 SNS 피드에 추천으로 뜬 AI 강좌를 하나 들어봤다. 뭘 배우려던 건 아니었다. 다른 사람들은 지금의 흐름을 어떻게 보고, 무엇을 가르치는지가 궁금했을 뿐이다.

실망스러웠다. 오픈소스 몇 개를 설치하고 ‘실습’이라는 이름으로 몇 번 만져보는 게 전부였다. 차라리 ChatGPT와 몇 번 대화하는 편이 더 정확하고 더 깊었다.

왜 이런 강의가 계속 나올까?

답은 간단하다.

모든 게 쉬워졌기 때문이다.

아는 척이 쉬워졌다

교육과 서비스 판매는 본질적으로 조금 더 아는 사람이 모르는 사람에게 방법을 알려주는 일이다. 그 자체를 탓할 생각은 없다.

다만 예전에는 누군가를 가르치려면 적어도 몇 년의 공부나 실무가 필요했다. 아는 척을 하려 해도, 그럴듯하게 아는 척하기가 쉽지 않았다.

지금은 비전문가가 전문가처럼 보이기가 너무 쉽다. 전공이냐 비전공이냐의 문제가 아니다. AI가 쓸 만해진 지 얼마나 됐다고, 세상에는 벌써 이렇게 많은 ‘AI 전문가’가 있는가.

나 역시 전문가는 아니다. 다만 초창기부터 AI를 헤비하게 써온 입장에서 확실히 아는 게 하나 있다. 이 분야에서는 한두 달 전의 지식도 금세 옛것이 된다. 그때 맞았던 것이 지금은 틀릴 수 있고, 그때의 최선이 지금은 형편없는 선택일 수 있다.

AI가 바꾼 일상은 과거 어떤 산업혁명보다 빠르게 대중에게 흡수되고 있다. 그래서 쉽게 풀어 가르치는 역할은 분명 필요하다.

문제는 그 가르치는 일마저 너무 쉬워졌다는 것이다. 직접 겪지 않은 것을 공개된 자료 몇 개로 조합하고, AI로 정리하고, 그럴듯한 문장으로 포장하면 오래 경험한 사람처럼 보일 수 있다.

경험과, 경험처럼 보이는 콘텐츠 사이의 경계가 흐려지고 있다.

책이 사고 프레임워크가 되다

그래서 교육 자체가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교육은 시대가 변해도 쉽게 변하지 않는 것을 익히고, 그것으로 사회에 기여하게 하는 일이다. 그런데 지금은 무엇이 ‘변하지 않는 것’인지부터 흔들리고 있다.

IT만 봐도 그렇다. 나는 이제 프로그래밍 실무서를 살 이유를 거의 느끼지 못한다. 어쩌면 컴퓨터공학은 ‘기술을 배우는 학문’에서 ‘사고의 틀을 배우는 학문’으로 옮겨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사고력을 위한 독서는 여전히 중요하다. 오히려 더 중요해졌다. 하지만 프레임워크 사용법이나 API, 개발 기법을 설명하는 실무서의 수명은 점점 짧아지고 있다.

과장이라고? 내가 실제로 쓰는 도구를 하나 소개한다.

book-to-skill. PDF나 EPUB 책을 Claude Code 스킬로 바꿔주는 도구다. 책에서 핵심 멘탈 모델, 챕터별 지식, 용어집, 패턴, 치트시트를 뽑아 구조화한다.

흥미로운 건 검색과 추론을 분리한다는 점이다. 일반적인 RAG처럼 관련 문장 몇 조각을 찾아 넘기는 게 아니다. 저자가 책 전체에 걸쳐 쌓아 올린 프레임워크와 안티패턴, 의사결정 규칙을 미리 구조화해 두고, AI가 그 관점으로 내 문제를 추론하게 만든다. 공개 후 GitHub 스타는 금세 1만 개를 넘겼다.

나는 이걸 꽤 적극적으로 쓴다.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지 않아도, 그 책의 관점으로 내 프로젝트와 산출물을 검토하게 할 수 있다.

“이 저자라면 이 설계를 어떻게 볼까?”
“이 코드에서 저자가 경고한 안티패턴은 뭘까?”
“책의 의사결정 원칙을 적용하면 어떤 선택지가 나올까?”

책은 더 이상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야만 하는 매체가 아니다. 책 한 권이 AI가 쓸 수 있는 하나의 사고 프레임워크가 되어가고 있다.

자세한 활용법은 논지를 벗어나니 생략한다. 개발자라면 한 번 직접 써보길 권한다. 내가 왜 실무서의 역할이 바뀌고 있다고 말하는지 금방 느낄 것이다.

알록달록한 펭귄들

그리고 이제 모두가 생산자가 되려 한다.

예전에는 핑크 펭귄이 소수였다. 남들과 조금만 달라도 눈에 띄었다.

알록달록한 펭귄들

지금은 알록달록한 펭귄이 너무 많다. 무엇을 만들어도, 말해도, 팔아도 튀기 어렵다.

몇 달 전 “AI만 있으면 혼자서 못 만들 게 거의 없다”는 글을 썼다가 꽤 많은 비난을 받았다. 기억나는 댓글이 있다.

“그럼 포토샵 만들어 주세요.”

이미 누군가는 만들고 있다. Compositor는 무료 오픈소스 맥용 포토샵 대안을 표방하는 이미지 편집기다. 만든 사람은 포토샵은 너무 비싸고 GIMP는 손에 익지 않아 직접 만들었다고 말한다. 레이어, 마스크, 블렌드 모드, 리퀴파이, 스팟 힐링까지 갖췄다.

이게 포토샵을 대체한다는 얘기가 아니다. “개인이 어떻게 저런 걸 만들어?” 했던 것들의 경계가 빠르게 무너지고 있다는 얘기다.

개발도 쉬워졌다. 디자인도, 글도, 영상도 쉬워졌다.

이제는 패키징조차 덜 중요해지고 있다. 범용 기능만으로는 AI보다 싸면서 AI만큼 고객에게 맞춰주기 어렵다.

쉽게 만들어지지 않는 것들

그렇다면 모든 게 쉬워지는 시대에 중요한 교육은 무엇일까?

역설적으로 인문학이다. 철학과 문학, 그리고 소프트 스킬. 사람과 관계를 맺는 능력, 생각을 말로 표현하는 능력, 자기 주장을 세우고 설득하되 때로는 남의 생각을 받아들이는 능력.

내 느낌만은 아니다. 세계경제포럼(WEF)의 「2025 일자리의 미래」 보고서에서 55개국 1,000여 개 고용주가 꼽은 핵심 역량은 분석적 사고 69%, 회복탄력성·유연성 67%, 리더십과 사회적 영향력 61% 순이었다. 프로그래밍은 17%였다.

WEF 2025 핵심 역량

나 같은 극I에게는 설 무대가 점점 줄어드는 셈이다.

그래서 나는 내 아이에게 코딩보다 먼저 생각하는 법을 가르치고 싶다.

자기 생각을 만드는 법.
그 생각을 말하는 법.
다른 사람의 생각을 듣는 법.
그리고 사람과 연결되는 법.

정답을 찾는 일은 AI가 점점 더 잘할 것이다. 하지만 무엇을 물어야 할지 정하고, 그 답을 들고 사람 앞에 서는 일은 여전히 사람의 몫이다.

모든 게 쉬워졌다. 만드는 것도, 배우는 것도, 아는 척하는 것도.

그래서 쉽게 만들어지지 않는 것들이 더 귀해졌다.

경험. 판단력. 취향. 관계. 신뢰.

앞으로의 교육은 더 많은 것을 가르치는 일이 아니라, AI가 대신할 수 없는 것을 남기는 일이어야 하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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